대형 유기견들과 함께한 MZ세대 로타리 회원들의 하루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9월 초의 어느 아침, 전신을 덮는 방호복을 입고 장갑과 마스크까지 착용한 20여 명의 청년들이 울타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 즉시 커다란 덩치의 개 수십 마리가 덮쳐온다. 꼬리를 흔들고 손을 핥고 제자리를 빙빙 돌고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개들을 사람들은 못 말리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쓰다듬고 안아준다. 그러다 누군가는 너무나도 행복해진 개들에게 떠밀려 넘어지기도 한다.
MZ-E 로타리클럽의 창립회장 임송희 씨가 말한다. "방호복을 꼭 입어야 해요. 개들이 우릴 너무 좋아하거든요. 흥분해서 달려들면 털이 엄청 붙고 가끔은 긁히기도 해요. 이걸 입어야 이 아이들과 가까이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죠."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유기견 보호소 '유기견 숲'은 대형견 전문 보호소로, 100평 규모에 중대형견 100여 마리가 생활한다. 견종은 다양하다. 진돗개, 셰퍼드, 시베리안허스키, 래브라도리트리버 등. 하지만 제일 많은 건 종을 정확히 알아볼 수 없는 믹스견이다. 다리를 절거나 눈을 다친 개들도 곳곳에 보인다.
이곳을 운영하는 박준성 대표는 원래 애견호텔을 운영했다. 시간이 지나며 호텔에 맡겨졌다가 사람들이 결코 찾아가지 않는 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아이들을 한두 마리씩 거두다 보니 결과적으로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하게 되었다는 사연이다.
왜 하필 대형견 전문 보호소를 운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큰 개들을 받아주는 유기견 보호소가 많지 않아요. 특히 지금 여기 있는 아이들은 그냥 구조된 개들이 아니라 다른 보호소에서 사고를 쳤거나 싸움을 해서 정말로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죠." 입양을 가는 경우도 있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초기에는 몇 번 입양을 보내기도 했었는데 거의 다 파양당해서 되돌아왔어요. 이제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이 아이들이 여기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일반적으로 대형견이 중소형견보다 키우기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인 대다수의 거주형태는 대형견을 키우는 일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인구가 아파트나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데다 대형견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형견을 잘 키우지 않고, 키우다가 유기하는 비율도 높다. 유기된 대형견들은 보호소나 임시보호 가정, 입양처를 찾기도 힘들어 결국 안락사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올해 4-10월 6개월 동안 경기도 내 유기동물보호소에 접수된 유기동물 중에서도 중소형견은 6558마리 중 25%인 1681마리가 안락사된 데 비해 15kg 이상의 대형견은 1307마리 중 39%가 안락사에 이르렀다.
주인에게서 버려진 개들이지만, 이들은 지금도 놀랍도록 사람을 좋아한다. "로타리 회원들은 청소를 하고, 이불과 담요를 교체해주고, 물품도 기부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개들과 놀아주는 일이죠. 개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사람의 손길이거든요." 박준성 대표의 말이다.
이날 MZ-E 로타리클럽 회원들은 심장사상충약과 기생충약, 휴지와 쓰레기봉투, 그리고 여기저기서 모은 이불과 카페트를 가지고 왔다. 이들은 마당과 실내를 오가며 개똥과 개털을 치우고, 새로 가져온 두툼한 이불을 깔아 포근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는 내내 개들이 주위를 맴돌며 애교를 부렸다. 임송희 창립회장은 말한다. "이불이 아주 많이 필요해요. 한 번 깔아줘도 한 달이 못 가 다 뜯어지니까요. 사람 냄새가 묻어 있어서 개들이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MZ-E 로타리클럽은 창립된 지 갓 1년이 된 신생클럽이다. MZ-E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그리고 에너지의 약자다. 그 말 그대로 회원들은 대부분 20-30대다. 임송희 창립회장은 말한다. "젊은이들은 돈은 없지만 에너지가 있죠. 기부는 많이 하지 못하지만 직접 발로 뛰며 봉사를 하자는 게 우리 클럽의 모토예요." 창립 초기, 클럽의 시그니처가 될 수 있는 봉사활동을 기획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던 회원들은 그들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 동물을 좋아한다는 것. "이 유기견 보호소가 이미 몇 번 버려진 개들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돌봐주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분기에 한 번 여기에서 봉사하기로 했죠."
이날의 가장 큰 임무는 여름 내내 마당의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던 천막을 철거하는 것이다. 클럽 회장인 정병주가 땀을 뻘뻘 흘리며 사다리에 올라가서 천막을 묶고 있던 줄을 끊어내고, 다른 회원들은 서로 농담과 웃음을 건네며 마당으로 떨어진 무거운 천막을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 개들은 새로운 놀이라도 발견한 양 천막 위아래를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보며 박경민 클럽 봉사위원장은 말한다. "작년에 반찬을 만들어서 독거노인 분들께 전해주고 안부를 묻는 봉사활동에 자원봉사자로서 참여했어요. 그동안 다른 NGO를 후원하긴 했었지만, 직접 봉사활동을 해보고 나니 로타리에 가입해서 이런 일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배관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로타리의 직업봉사 개념이 특히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보호소 사장님한테 시설물 관련해서 혹시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보려고요. 저희 클럽에는 저 같은 배관공도 있고 인테리어 전문가들도 있죠.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저희는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약속된 시간이 끝날 무렵, 보호소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개들의 시선이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 모이고, 회원들은 한 번이라도 더 개들을 만져주려 울타리 속으로 손을 내민다.
박경민 봉사위원장이 마지막 바람을 털어놓는다. "앞으로 기존 회원의 참여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 겁니다. 우리가 더 많이 실제로 만나고 몸으로 봉사해야만 젊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많이 가입할 테니까요. 지금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서툴고 부족하지만, 우리는 해가 갈수록 더 나아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