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느끼는 가을 – 시각장애인과 로타리 회원들의 자전거 동행
10월의 어느 날, 청주드림 로타리클럽 회원들과 시각장애인 생활시설인 광화원 원생들이 짝을 이뤄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가을 라이딩을 떠났다.
가을이 절정에 이른 10월 말의 어느 주말, 청주드림 로타리클럽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청주 무심천 체육공원에 모여 천막을 치고 테이블에 간식 봉지와 자전거용 헬멧을 늘어놓았다. 천막 오른쪽에는 2인용 자전거 19대가 아침 햇살을 맞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이날은 청주드림 로타리클럽이 2017년부터 매년 가을 개최하는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자전거 동행'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오전 9시가 되자 남녀노소가 섞인 한 무리가 기대와 흥분이 섞인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 시각장애인 생활시설인 청주 광화원에 살고 있는 원생들과 사회복지사들이다. 클럽 회원들과 원생들, 사회복지사들은 모두 섞여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지난해 행사가 올해 5월로 미뤄져 열렸던 덕분에 대부분의 얼굴과 목소리들이 익숙하다.
이번 행사 준비를 주도한 청주드림 로타리클럽 신승호 총무가 마이크를 잡고 식순을 진행한다. 그는 “광화원 친구들과 함께하는 라이딩이니만큼 모든 것을 느리게 진행할 겁니다. 30분 정도마다 휴식을 취할 거고, 두 시간 동안 12km만 달리면 됩니다. 그러니까 빨리 갈 생각 하지 마시고 무조건 안전하게, 아시겠죠?” 하며 안전을 강조했다. 삐뚤빼뚤 줄을 선 40여 명의 사람들은 “네!” 하고 대답하고는 구령에 맞춰 손목과 발목을 돌리며 준비운동을 했다.
마지막으로 오늘 함께 2인용 자전거를 탈 파트너가 발표되었다. 이름이 하나하나 불릴 때마다 와아 하는 함성과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상민 원생과 파트너가 된 김민호 회원은 "올해 5월 자전거 동행 때도 상민이가 파트너였어요. 상민이는 의젓하고 자전거도 잘 탑니다. 이번 자전거 동행도 기대가 되네요"라고 말하며 싱글벙글 웃었다.
함께 탈 자전거를 고르고, 안장 높이를 조정하고, 간식과 물을 챙기고, 헬멧까지 쓰고 나면 드디어 출발할 시간이다. 무심천 체육공원에서 고은교까지를 왕복하는 24km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로타리 회원들은 앞에서 핸들을 잡고 길가에 핀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모양이며 하얗게 보풀이 일어난 듯한 억새밭, 무심천 강물 위에서 반짝거리는 윤슬과 새파란 가을 하늘에 대해 들려주었고, 광화원 원생들은 종종 질문을 해가며 함께 열심히 페달을 굴렸다.
미리 예고한 것처럼 라이딩은 느릿느릿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는 다같이 둘러앉아 간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5월에도 자전거 동행에 참여했다는 권샛별 원생은 "5월에 자전거를 처음 탈 때는 엄청 무서웠는데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사실 오늘도 두 번 넘어지긴 했는데, 그래도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다. 파트너 지성구 회원은 “5월에도 샛별이랑 같이 탔는데 그때보단 덜 힘든 것 같아요. 그때는 왕복 33km였거든요. 2인용 자전거를 탄다는 게 앞사람한테도, 뒷사람한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고 덧붙였다. 옆에서는 김태식 원생의 파트너 김동국 회원이 "저는 태식이가 뒤에서 페달을 다 밟아줘서 너무 편하게 왔어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원생들과 회원들이 어울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광화원 소속의 김재흥 팀장은 설명했다. "5년 전에 우리가 청주드림 로타리클럽에 부탁해서 자전거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활동 범위가 좁아요. 특히 광화원 식구들은 지체장애가 있는 경우도 많아 1대 1 케어가 필요하다 보니 세상 구경할 기회가 흔치 않죠. 자연 속에서 외출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고, 옆에 꽃이 있다거나 어떤 풍경이 보인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조금 더 변화가 일어날 수 있어요. 자전거 동행은 소중한 기회이고 원생들이 기대하는 일입니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두 시간이 넘게 흐른 뒤에 자전거 행렬은 반환점인 고은교에 도착했다. 모두가 기다렸던 점심시간, 김병준 클럽 회장의 부인이 준비한 도시락이 자리마다 놓였고 한쪽에서는 회원들이 바쁘게 삼겹살을 구워 테이블에 전달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회원들은 파트너 옆에 앉아 반찬을 설명해주고 집어서 숟가락에 올려주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반찬을 놓고 티격태격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것도 한번 먹어봐." "그게 뭔데?" "이거? 무랑 고춧가루 무친 거. 안 매워." "나 무 싫어. 안 먹을래." “에이, 먹어봐. 맛있는데.”
밥을 먹고 한바탕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는 노래자랑이 열렸다. 노래를 부른 사람에게는 무조건 문화상품권이 수상되는 아주 관대한 노래자랑이다. 광화원에서 가수로 불리는 김원중 원생이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고 흥겨운 몸짓을 곁들여 이자연의 찰랑찰랑을 부르자 아는 노래에 신나 하며 모두가 떼창을 했다. 아이돌 그룹 엔시티의 팬이라는 권샛별 원생은 진지한 태도로 엔시티의 영웅을 완창했고, 한울림 원생은 "우리가 오늘 자전거를 타러 왔지만 지금 이 시간만큼은 전국 노래자랑이라고 생각하고 많이 즐기다가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라며 한마디하고는 가수 뺨치는 실력으로 애절한 발라드를 부르기도 했다.
모두가 돌아가며 한 곡조씩 뽑고 상품권도 두둑이 챙긴 후에는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온 길을 느릿느릿 되짚어 출발점이었던 무심천 체육공원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가 넘어서였다. 3개월차 신입회원인 조항범 회원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소감을 말했다. "저번에 와서 해보니까 의미가 있더라고요. 파트너랑도 처음엔 사실 어색했는데 자전거 타면서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같이 땀을 흘리고, 밥 먹으면서도 얼굴을 마주보고 음식을 놔주고 하니까 서로 마음의 문이 열리고 친해졌죠." 그는 5월 자전거 동행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후 클럽에 가입했다.
행사 준비와 진행을 총괄했던 신승호 총무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광화원 친구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니까 우리도 기분이 아주 좋죠. 자원봉사자로 왔다가 클럽에 가입한 사람도 꽤 많아요. 우리 회원들이 다들 바쁜 사람들이긴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자전거 동행은 계속될 겁니다”라며 내년 이맘때 다시 동행할 것을 기약했다.